우리의 믿음을 생각할 시간

마태복음 8장 23∼27절

[오늘의 설교] 우리의 믿음을 생각할 시간 기사의 사진
예수님이 다른 지역으로 가시려고 배를 타자 제자들이 따릅니다(23절).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불고 파도가 배를 덮칩니다. 작은 배에 닥친 위기 상황에 대해 마태는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왕좌왕하며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 죽을 것 같은 광풍 앞에 그들의 믿음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본래 믿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따라다닌 제자들이요, 불과 얼마 전에 문둥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능력을 직접 본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눈앞에 펼쳐진 광풍 앞에서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입니다.

한 형제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목사님, 요즘 예수님에 대해 인문학적인 접근을 많이 하잖아요. 산상수훈에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위대한 스승으로 마음에 와 닿고 은혜가 됩니다. 그런데 폭풍을 잔잔하게 하고 병을 낫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에 대해선 와 닿지가 않아요.” 제가 답했습니다. “형제님, 그것이 바로 인문학과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그 간격을 메우는 것이 믿음이지요.”

이 형제의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하십니까. 현대인들이 예수님을 생각하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다가옵니까. 어떤 교양으로서 인생에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는 좋은 말씀을 주시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주시는 구원자이십니까. 또 인생의 광풍들, 즉 자녀·직장·사업·물질·건강의 문제 앞에서 충분히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실 수 있는 인생 주관자로서의 예수님으로 다가옵니까. 분명한 건 믿음은 추상이 아니고 실제라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 조지아 주 선교사로 갈 정도로 나름 신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대서양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자신이 탄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그는 갑판 뒤에 숨어 떨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주를 위해 나섰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어야 합니까.” 그때 배 밑창 싸구려 객실에서 찬송이 들려왔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들은 죽음 앞에서 평온하게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모습 앞에서 웨슬리 목사님은 부끄러운 자신의 믿음을 보게 됐습니다. 최고 지성으로 성경지식도 깊었고 기도도 많이 하고, 목사요 선교사로 헌신해온 자신이었지만 믿음은 그들의 것과 크게 다름을 목격한 것이지요. 간신히 살아 돌아온 웨슬리 목사님은 런던의 모라비안 형제들 모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회심하게 됐습니다.

인생의 광풍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감사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인생에 시련이나 문제가 없다면 잊어버릴 지도 모를 하나님입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 고난은 우리 믿음의 실제 모습을 직시하게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참된 믿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구원과 믿음의 대상이요, 두려움을 넘어서는 힘입니다.

김대조 목사<주님기쁨의교회>